[CRITIQUE] 심현섭: 공공미술 3/ 모더니즘과 공공미술의 불화


May 5, 2021 



Fiona Hanson/PA Images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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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후의 초기 공공미술인 ‘공공장소의 미술’은 모더니즘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장소와 직접적으로 관계한 대지미술과, 작품과 작가의 관계 뿐 아니라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미니멀리즘이 대두하면서 공공장소에 놓인 모더니즘적 미술에 대한 비판이 고조한다. 이러한 ‘공공장소의 미술’에 대하여 “플롭 아트(plop arts)’니 ‘광장의 똥(turd on the plaza)’과 같은 조롱이 나온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런 비판은 건축물 사이에 놓인 조각과 같은 작품이 그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미적 평가로서 건축계에서 주로 나왔다. 여기에는 미술을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완하는 부수적인 요소로 보는 시각이 반영되어있다. 반면 미술계의 비판은 건축물을 미술이 자리하는 장소의 일부로 보고 작품과 장소와 공공의 관계, 사회적 이슈, 미술과 제도 비판,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과 같은 제도·사상적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미술과 공공미술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모더니즘 미술과 미학이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표현 행위로서 예술가의 경험의 표현을 제시하는 예술가의 권리에 경도된 미술이자 감상 또한 주관적인 사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반면,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공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감상 또한 공중이라는 체에 걸러진 객관성을 요구하는 공적 행위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 가지고 있는 장소, 공중 등 개방적 영역과 작가중심의 개인적 영역 사이의 이해상충이 ‘공공’과 ‘미술’의 조화를 어렵게 한 것이다.


당시에 일어난 ‘공공장소의 미술’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담은 권미원의 언급은 미술과 제도, 특히 미술과 공중의 대응관계 등 이후 공공미술에서 펼쳐질 중요한 쟁점들을 적절히 함의하고 있다. 


“자율적인 성격의 유명한 미술작품들을 공공장소에 가져다놓는 것은 공공성을 향한 참된 제스처라기보다는 단지 미술관을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개별 미술가들의 자기만족적인 프로모션이자, 나아가 후원자의 지위를 고양시키는 기능을 할 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기 시작했다. (...) 미술작품이 장소의 특수성 그리고/또는 그곳에서 예상되는 관객에게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자, 공중은 추상미술의 시각 언어적 이질성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의 ‘엘리트주의적’ 태도에 대해 무관심으로 심지어는 적대감으로 보복했다. (...) 대부분의 공공 미술작품들은 예술적 자아의 자기충족적인 표현이었기 때문에 공공공간에 대한 경험을 개선하는 데에는 거의 기여한 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권미원, 2009)

 

위의 내용을 보자면 당시 ‘공공장소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 공공성의 부재, 작가의 자기만족적인 작품, 후원자와 같은 특정인을 위한 미술, 작품의 난해함으로 인한 관객의 외면, 작가의 엘리티즘에 대한 관객의 무관심과 적대감, 삶과 유리된 불쾌한 작품, 공공 공간개선에 대한 역할 상실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중들이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둘째,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대한 권한이 작가와 미술전문가에서 공중으로 이양하고 있다. 셋째, 공중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무관심’에서 ‘적대감’으로 변화하는데, 이는 공중의 공공미술에 대한 개입의 정도가 점점 깊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넷째, 공공미술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다섯째, 공중의 경험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심화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관성에 대한 공중의 도전이 가시화한 양상이다. 여기에는 1960년 이후, 특히 68혁명을 전후로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공중의 권리와 영향력이 커진 시대적 변화도 한 몫 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아래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1967) 개념은 특히 문학을 비롯한 예술 영역에서 작가의 주도권을 약화하는데 기여했다. 미술 영역에서 보자면 공중은 곧 공공장소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주도권이 작가에서 공중, 관객으로 전환하는 과도기로서 관객이 작품 제작에까지 관여하는, 이후 미술의 맹아가 싹튼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미니멀리스트들이 주장한 장소와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학적 체험은 미술제작과 감상에 있어 관객의 중요성과 주도성을 크게 향상시킨다. 



미술평론가 심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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