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이선영: 밀고 밀리면서 쌓이는 시간의 층


September 08, 2021 



배상순의 작품은 겉으로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그렇지만 휘저으면 감춰진 것들이 떠오를 듯한 잠재성으로 가득하다. 시간의 축만이 잠재성과 현실성의 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검은 벨벳에 하얀 젯소로 그려지는 형상은 애초에 명확할 수가 없다. 수 없는 필획이 거쳐야 겨우 명암 정도가 구별된다. 작가는 이러한 불투명성을 삶과 예술 모두에 적용한다. 매끄럽고 하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려지는 전형적인 회화가 아닌, 검은 벨벳에 하얀 젯소로 그려지는 모노 톤의 화면은 절제되며 세련되면서도 멜랑꼴리한 느낌이다. 거기에는 시간의 저항을 이기고 드러내려는 의지, 반대로 모든 행위를 무위와 죽음으로 덮어버릴 수 있는 어둠의 길항 작용이 있다. 작품들은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도 운동감이 있다. 밝음과 어둠의 상호관계는 기억과 망각의 상호관계와 연결된다. 물론 그것들이 이항대립의 관계는 아니다. 기억이나 망각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가령 치유는 기억으로도 망각으로도 가능하다.  



이하 모든 사진의 출전은 갤러리 이배에 있음.


배상순의 작품은 하나의 항으로 귀결되지 않는 상호적 움직임을 나타낸다. 어두운 배경, 또는 잠재적인 바탕을 이루는 벨벳은 특이하다. 작품의 독특한 면은 검은 벨벳이라는 바탕과 관련된다. 작가는 이 재료에 대해, ‘검은 캔버스 벨벳은 나의 회화에 관한 모든 감각을 엎어주는 매체이다. 흰 캔버스에 드러나는 검은색은 온전히 그대로 원하는 대로 그려져 가지만, 검은 벨벳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온전히 아름다운 검은 바탕으로, 어느 색을 칠해도 강렬한 흡수로 그대로의 색을 드러낼 수 없다. 흰색의 젯소는 흰색으로 온전하기 힘든 상황에서 수만 번 되풀이되는 과정과 축척 된 시간처럼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그 색을 볼 수 있듯이 우리의 관계들도 그러한 과정 중에 발견된다’(2019년 작가노트)고 말한다. 벨벳 위에 청먹과 젯소를 바르고 먹선과 목탄으로 선을 그리거나 젯소를 희석한 물감으로 세필한 화면은 수많은 반복에 의한 명암이 명멸하는 장이다. 원래 이 선은 인체데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작가는 몸을 재현하는 대신에 몸의 리듬을 표현한다. 구조가 아니라 작동을 나타낸다. 작가는 벨벳 작품이 ‘복잡하고 알 수 없는 한 인간의 내면의 깊이와 그리고 또 다른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 생기는 파장과 깊이’(2019년 담 갤러리의 2인전 작가노트에서)에 대한 회화적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내면이나 관계는 명확하게 가시화되기 힘들다. 작품들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축적되어서야 겨우 드러나는 얇은 실 덩어리 같은 이미지들’로 나타난다. 2018년 더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의 작가 노트에 의하면 그것은 ‘관계 안에서 생기는 파장과 깊이’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바람과 물결을 닮는다. 벨벳은 어떤 색을 칠해도 물감의 본연의 색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폐된 것을 거듭해서 해석하는 과정과 중첩될 수 있다. 회화는 작은 파장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미묘한 연결망이 된다.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가장 검은 검정은 검은 벨벳이라고 하면서이보다  깊은 검정은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주 공간에 있다고 말한다에바 헬러는 부패한 고기는 검게 변한다는 그리고 식물이나 치아가 썩어도 검게 된다는 예를 들면서 모든 것은 검정으로 끝난다고 말한다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는 검정 옷을 입고 있다고 인용한다배상순이 캔버스나 종이 대신에 선택한 주요 매체인 벨벳은 묶인 매듭을 풀거나 잘라내는 극적 행위처럼빛과의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배경을 이룬다작가의 붓질은  절대적인 검정에서 기억과 의미를 길어내려는 무수한 해석의 몸짓이다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운명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연결이다영겁의 시간이 쟁여져 있는 듯한 화면은 작가기 이미 휘저어 놓았지만 여력은 있다소리 없는 매체인 회화는 침묵으로 말한다역사를 담고 있기도  작품은 살아있는 존재뿐 아니라 사라진 존재들의 목소리도 깔고 있다

 

 목소리들은 들으려는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만 들리는 다소간 은폐된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역사의 다수를 구성하는 무명의 존재들은 배가 지나간 흔적처럼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오늘날처럼 SNS 등을 통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낱낱이 까발겨지는 사회가 도래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하지만 정보의 범람 속에서  또한 이전의 선사-역사 시대를 살아왔던 모든 존재들의 역사보다도  짧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을까배상순의 작품에 빼곡한 선들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기억과 해석의 몸짓처럼 다가온다그것은 자연과 역사가 그렇듯이 거듭해서 해석되어야 하는 오래된 텍스트다전시 제목으로도 쓰인  있고 작품 자체가 ‘시간의 이기도  작품은 농밀한 밀도를 가지는 추상적 언어를 구사하지만작품에 역사와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추상과 서사는 상충되는 면이 있다추상과 서사의 만남이 대부분 관념주의로 귀결되는 이유다.

 

 

SangSun Bae_More&Less1_182x368cm_Gesso on velvet_2005~2018



한국과 일본에서 수학하고 양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매듭처럼 꼬인 한일의 역사 관계에 관련되어 심층 연구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양국 간에는 실로 수많은 사건들이 있어 왔지만작가가 개별적 사건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추상 어법으로 서사를 담기는 힘들지만작가는 벨벳처럼 중성적이지 않은 표면 위에 무수한 선을 그으면서 서사의 과정에 상응하는 행위의 흔적을 남긴다그러한 행위들에 대한 의미 부여 또한 많은 층을 가지는 지난한 과정이다지상적 존재들이 유한한 삶을 살며 오갔던 발자국들 같은 무명의 흔적들이다흔적은  위에도  밖에도 있다드로잉 기반의 작품들은 드로잉이 쓰기의 연장임을 알려준다씌여진  위에  씌여지기를 반복한 사연들은 명쾌하게 읽을 수는 없다멀리서  화면에 파손된 기호 같은 형상이 떠도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역사는 재현주의의 몫이었으나 배상순은 추상 또한 역사를 이야기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과 자연을 비롯한 지시 대상으로부터 자율성을 꾀한 추상은 피상적으로  위험이  있어왔다잘못된 해결책은 갑자기 거대 관념으로 수직 이동하는 초월적 자세이다배상순은 역사로 확장될 개인의 목소리를 압축해서 담음으로써 잘못된 양자택일을 피해 간다벨벳을 포함한 여러 특이한 재료를 활용해서 입자와 선의 흐름을 드러나게  기법은 개체들의 삶에 대한 비유가 된다입자가 개체라면 개체는 또한 이합 집산하여 선적 흐름이 되고 다양한 방향을 가지는 선적 흐름은 복잡하여 얽힌다자연이 그렇듯이 거기에는 빈자리가 없다치열한 생존경쟁은 자연에서 자리가 비어있는 순간은 매우 드물다하지만 배상순의 작품에서 빽빽함은 정지가 아니라 지속적인 운동의 궤적일 따름이다몸에서 출발한 지글거리는 복잡한 선적 운동은 고요한 초월과는 거리가 있다화면을 확대해도 흐트러지지 않는 작품의 밀도는 각자 유일한 삶을 영위하는 듯하지만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격세유전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있다



SangSun Bae_The Chandelier 1_111x90cm_Archival pigment print, face mount(ed.9-1)_2018

SangSun Bae_The Chandelier 2_111x90cm_Archival pigment print, face mount(ed.9-1)_2018 



멀리서 보면 인간의 역사도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쟁취한 자율성은 상대적이다회화뿐 아니라 지구에서의  또한 시간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일단 대지라는 지구의 표층 자체가 그동안 살다가 죽은 것들의  아니겠는가죽음 없이 삶이 있지 않음에도 자명한 진리를 일단 인정하고 싶지 않다살면서 죽음을 자꾸 생각하는 것은 삶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고대 철학자들이 말한 대로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고  역도 진리이기 때문일까삶의 의미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하지만 예술은 죽음을 포함한    시간의 주기를 생각한다모든 것이 끝인 종말론적 세계관이 아닌 순환적 세계관은 나름의 위로를 준다종말론이든 순환이든 개인의 인생을 넘어서는 시간을 서술하기 위한 방식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배상순에게 추상은 현실의 배제가 아니라 현실을 축약해서  많은 현실을 내포하는 대안적 언어다

 

인간이 원초적 자연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꾀한 이후로도 지구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기 위한 투쟁은 여전했다처음에는 자연과 이후에는 인간과의 게임이 중요해졌지만자연의 위상은 여전하다 세계적인 감염병이나 그보다  충격적이라 예상되는 기후변화  악재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모두가 작은 변화들이 쌓여 생긴 거대한 변화이다어두운 화면은 묵시록적이다하지만 그것은 종말이 아닌  다른 삶의 토대가 된다그리기와 지우기가  차이가  나듯이사라지는 점과 선은 동시에 생겨나는 점과 선이기도 하다소용돌이 같은 흐름 속에 피드백은 즉각적이다자연 생태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적  또한 항시적인 경쟁이다평화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전쟁 같은 삶의 짧은 막간극이기 때문이다평화는 힘의 균형일 따름이다전쟁과도 같은 경쟁 속에서 말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존재들의 사연은 더불어서 묻혀간다




SangSun Bae_The Chandelier 6_111x90cm_Archival pigment print, face mount(ed.9-1)_2018 

SangSun Bae_The Chandelier 7_111x90cm_Archival pigment print, face mount(ed.9-1)_2018 


작가는 작업을 통해서 시간을 더욱 가속시킨다. 화면을 덮는 일정한 굴곡 면을 가진 선들은 휘젓는 힘들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맹목적 운명의 지배로부터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삶을 향해 진보해왔지만, 사회적 규칙이 강하게 작동하는 만큼 무질서의 위험 또한 커지는 것이 문명이다. 현대인은 역사 속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힘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작품들은 생성 소멸하는 미시-거시 우주의 역사를 표현하는 듯하다. 선들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선은 풀려난 매듭처럼 느슨하다. 같은 크기의 화면에 끊어질 듯 연결된 방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밀도에 의한 명암 차이로 화면에 나타나는 형상은 매체를 다르게 사용한 배상순의 다른 작품들처럼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존재의 흔적들은 때로 기호 같은데,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살리려는 작가의 방식은 정지된 기호가 아니라 기호가 되기 이전이나 이후의 상황을 말한다. 

그것은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자리를 암시하는 것이다. 어두운 바탕에 수없이 그어진 선들은 어떤 명확한 형태, 즉 의미로 귀결되기보다는 생성과 소멸의 흔적 그 자체로 남아있다. 2018년 마이클 위틀과의 2인전 (더 트리니티 갤러리)의 전시부제는 [circle] 이었지만, 배상순의 작품은 완전체의 상징이라할 수 있는 써클이 되려는, 또는 써클이 해체되려는 과정처럼 보이는 느슨한 형상. 풀린 실타래나 용수철 같은 운동하는 선들을 보여준다. 끝없이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의 무리처럼 보이는 화면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절대적 정지란 없다. 벨벳에 젯소에 그린 형상들은 작품 제목처럼 ‘행간’이다. 조형적 언어를 포함하여, 언어는 행간에서 의미 있는 변형이 일어난다. 2019년 갤러리 이배에서의 전시 [시간의 층]에서 벨벳 위에 젯소로 그린 작품은 패널마다 다른 명암의 분포가 반복 속의 차이를 보여준다.




SangSun Bae_Untitled_Panorama-1s_190x130cm_Gesso on velvet_2019



완전한 동그라미가 아닌 조금씩 어긋나며 회귀하는 선들은 영겁회귀의 신화를 떠올린다영겁회귀하는 선들은 다른 밀도에 의해 블랙홀또는 화이트홀로 보이는 구멍을 통해  다른 차원에서의 영겁회귀를 보여줄 것이다최근 10 년간 발표된 작품에 국한시켜 말하자면배상순만의 특이한 화법인 벨벳에 젯소 드로잉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선의 밀도의 차이에 의해 명암이 갈린다는 특징이 있다전시를 위해 걸린 벽면의 작품들은  자체가  다른 관계를 이루면서 전체가 연동된다보통  작업으로 사용되는 젯소가 주요 미디어가 됨으로써 작품은 표면의 묘사가 아니라  아래의 실재를 암시한다그것은 지상에 태어나 생로병사를 거치며 노동과 예술전쟁과 평화의 여정들을 거치고 살아갔을 개체들의 흔적이다수많은 공회전헛수고우회로와도 겹치는 선들은 세상사에 직선적 해결책은 없음을 암시하는 듯하다무수한 선들의 흐름을 통해 작가는 무명의 영토를 표현한다

 

 가는 선들은 매듭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2013 [부러진 매듭( 갤러리) 전시 작품에는 잘려 나온 매듭 뭉치 이미지가 사진 프린트 작품으로 나와 있다확대된 이미지다 보니 밧줄을 이루는  다른 미세한 선의 흐름이 드러난다다른 작품들은 결국 매듭이 풀려나가는 과정이다잘려지고 풀어지는 매듭에서는 사람의 얼굴이나  같은 느낌이 있다모체와의 연결을 끊어내고 시작하는  자체가 매듭이 생기거나 자연스럽게 풀어지는또는 단호하게 잘라내는 과정의 반복 아니겠는가캔버스에 젯소목탄먹으로 그린 매듭은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화이트의 경쾌한 선율이 겹쳐진다벨벳에 그린 회화 이외에 사진도자설치  다른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 또한 선적 흐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지속적이다. 2019 갤러리 이배의 전시 [시간의 ]에서는 그물에 걸려 나온 덩어리들이 담긴 사진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또는 마음에 뭉쳐져 있을 덩어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SangSun Bae_Untitled_Panorama-2s_190x130cm_Gesso on velvet_2019 


이미지에 포함된 수많은 선적 흐름은 한시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개체들이 행해왔을 그만큼의 몸짓들이다. 배상순의 작품은 타자와의 관계를 역사적 관계까지 확장 시킨다. 2015년 대전문화재단의 지역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한일 근대사에 관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기억을 수집하고 해석했다, 사진과 영상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주제는 국가 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태어난, 가령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 사람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배상순의 작업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풀 수 없는 매듭을 사회나 개인의 차원에서 풀 수 있음을 암시한다. 국가 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관계 속에서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야기는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2019 작가 노트에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개개인의 이야기에는 관계를 형성해가는 치열한 삶의 과정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수없이 되풀이하지 않으면 이미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 벨벳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역사 속의 무명인들의 운명을 본다. ‘생존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아우성처럼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침묵하는 것에 말을 부여하는 힘든 작업이다. 작가에게 매듭은 관계의 은유이다. 하지만 인간은 모체로부터의 분리라는 원초적 트라우마로부터 삶을 시작하지 않는가.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즉 관계의 연속이다. 여기에는 순리적인 관계도 잃고 꼬인 관계도 있다. 작가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의 예를 들면서, ‘우리 안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매듭처럼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매듭이든 풀거나 잘라내야 자유로워진다. 그러한 모색 속에서 생겨난 해법에 대해 당면했던 매듭 짓게 된다. 매듭과 매듭에서 풀려난 듯한 선적 흐름들을 보여주는 배상순의 작품은 조형적 언어와 내용을 중첩시킨다. 매듭은 신화부터 심리학까지 보편적인 상징으로 등장해왔다. 



(참고) 2013년 [부러진 매듭] 전(갤러리 담)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이미지와 상징주술적-종교적 상징체계에 대한 시론]에서 묶음과 풀림의 관계 속에서 매듭의 상징을 해석한다엘리아데는 선사시대에 올가미를 무기 삼아 실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들면서원시적 사고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무기라도 주술적 수단이 된다고 본다그에 의하면 질병이 바로 올가미이므로 죽음은 최고의 결박인 셈이다질병과 죽음이것은 거의  세계에 가장 대중적으로 유포되어 있는 결박의 주술적-종교적 복합체를 구성하는  요소이다배상순의 조형어법에 깔린 반복의 방식 또한 주술적 느낌이 있다주술에 대항한 주술이다배상순의 작품에서 매듭은 개인적 차원이나 역사적 차원에서 지상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존재들이 피할  없는 삶의 투쟁을 상징한다작가는 벨벳 위에 그림을 그리는 거의 불가능한 행위를 전쟁과도 비유한다하지만 매듭은 풀림을 위한 전조이기도 하다매듭이 풀리기 위해서는 관계의 재설정이 필요하기에 타자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신화학자  쿠퍼 또한 매듭의 속박하는 힘은 항상 풀어주는 힘을 내포하고 제약과 동시에 결합의 뜻을 가지므로 매듭의 의미는 양면 가치적이라고 말한다그에 의하면 매듭은  연속연결계약고리숙명인간을 숙명적으로 속박하는 결정론불가피한 일을 상징한다매듭을 끊는 것은 구제와 인식에 이르는 지름길을 취함을 나타낸다정신분석은 매듭에 대한 이러한 고풍스러운 상징에 현대적 함의를 제시한다자크 라깡의 보로메오 매듭(Borromean knot) 심리적 존재에 대한 모델이다 매듭의 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실재와 상상그리고 상징으로 얽혀 있다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이상 깊이의 모델이 아니라 표면의 모델로 설명된다이러한 심리적 모델에서 실존의  영역은 하나가 풀리면  풀리게 되어 있다 영역은 각각의 본질보다는 상호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현대의 언어학이나 기호학은 의미가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고 정의한다수많은 결의 관계  자체가 본질이  배상순의 작품 또한 기호적 차이 속에서 의미를 길어낸다.



미술평론가 이선영


출전: 우수전속작가 비평지원 프로그램(예술경영지원센터-갤러리 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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