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심현섭: 김대수 사진전 《풍경사색 LAND TO SOUL》: 사유의 두 공간

November 3, 2021


전시장 입구 로비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올림픽 공원의 숲은 이제 막 가을을 넘기려는 노랗고 붉은 잎들이 스산한 하늘 아래, 사진처럼 정지해있다. 안에 들어서자 바람이 불면 사각거리며 흔들릴 것 같은 나뭇가지와 잎이 벽에 가득했다. 마디를 선명하게 드러난 대와 나무숲은 흑백의 농담과 색의 반전효과로 인해 더욱 시선을 붙든다. 대나무의 마디들, 잎과 가지가 풍성하게 뭉쳐있는 나무숲, 몸통들의 흰 정렬은 생명의 의지를 받치고 있다. 하나의 나무일지라도 가지들이 밀집한 사진 역시 숲 같다. ‘군집’ … 김대수는 하나의 대상보다는 군집의 형태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정적인 대상뿐 아니라 동적인 현상도 ‘군집’을 이룬다(<Kissing Rain>, 2013). 동일 대상이라도 반복하여 찍어 배치하는 전시 공간의 활용으로 무리를 형성하는 그에게 ‘군집’은 중요한 모티프라는 생각이 든다(<하늘> 연작). 김대수의 ‘군집’,  숲은 우선 ‘같음’을 말한다. 이건 범주화의 영향이 크다. 대나무라는 개념으로 범주화하여 규정한 이름에 매여 있는 인간의 인식은 사진 속 대나무들을 바라볼 때 모두 같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지배당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대나무를 관찰해온 김대수는 실제 대숲에 가보면 휜 대나무가 의외로 많다면서 대나무가 곧다는 건 관념 속에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가 곳곳의 대숲을 찾아다니면서 곧은 대나무라는 관념을 충족할 만한 실제를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댓잎으로 관심을 돌린 것 같다. “ … 그러던 차에 대나무 줄기가 아닌 댓잎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나무 줄기를 촬영하는 사람은 많아도 댓잎을 찍는 사람은 없거든요. 실제 댓잎을 맞댄 대숲이 군중같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김대수의 ‘같음’에서 ‘다름’으로 바뀌는 시각의 변곡점은 ‘다름’이 단순하게 ‘같음’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어떤 접점, 즉 ‘같음’ 속 ‘다름’이거나 ‘같음’과 ‘다름’의 경계에 있다. 김대수는 이 지점에 개인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집단으로서 인간사회를 투영한다. ‘군집’은 고대 동굴벽화에 드러나는 인간과 동물에서와 같이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하는 하나의 형태다. 김대수가 말하는 “공생과 기생”은 추측컨대 이를 가리킨다. 함께 살기 위해서 개체들은 ‘다름’으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면서 때론 상대와 경쟁하고 배려하고 의지하여야 한다. 잔뜩 모여 있는 군집체로서 김대수의 숲속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부딪히는 불편을 감수하고 함께 뭉쳐있을 때 숲은 바람을 견딘다. 


 

김대수 사진전 전시 포스터. (출저 한미미술관)

내가 보기에 김대수의 숲 사진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으로서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자본과 경쟁의 굴레에서 서로 불편하게 부대끼며 살지만 그래도 잊어서는 안 될 배려와 존중의 마음을 일깨우는 듯하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관객의 수용을 기다리지 않는다. '작가가 ‘A’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A’라고 읽게끔 하는 것은 오로지 작가 자신의 역할이자 몫이고,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작가의 시각적 표현 방법이다.' 그의 메시지는 “작가의 시각적 표현 방법”, 즉 그가 오랜 시간 숙련한 사진기술로 인해  매우 정교하게 가다듬어져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진의 원형으로 보이는 흑백필름, 색의 반전 효과, 군집에 집중하는 시선이 우려낸 미적 힘은 관객의 시선과 사유를 적극적으로 이끈다. 이것이 그의 사진을 대상의 단순한 순간 포착이나 복사를 넘어 ‘작가적 메시지’로 다가오게 하는 포인트다. 

김대수 사진 작품. (출저 김대수)



한 층을 내려가면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숲 사진에서 보여줬던 김대수의 사진기술은 여기에서 더 진가를 발휘한다. 대상은 하늘과 땅, 구름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색의 아름다움은 압도적으로 다가와 관객의 눈과 정서를 만족한다. 김대수는 관객에게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감각의 반복적인 진동을 제공하기로 작정한 듯, 하나의 대상을 반복하여 찍고 연이어 설치했다. 이러한 ‘반복’의 배치는 숲 사진에서 보여줬던 김대수의 ‘군집’을 보여준다. 숲의 군집이 대상에 주목하게 하여 ‘다름’을 낳았다면, 여기의 군집은 관객의‘시점’을 분산하기도 하고 또 반복적으로 끌어당기기도 하면서 대상을 덩어리화한다. 일체화한 대상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객은 시각적으로 대상이 점점 사라지고 대상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색과 빛의 아우라에 몰입한다. 반복적으로 배치한 사진들이 서로 일체화하고, 이렇게 일체화한 대상이 사라지면서 관객과 하나가 되는 현상이 시나브로 나타난다. 위층 숲 사진의 방이 ‘같음’과 ‘다름’이 공존하는 사회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이라는 작가의 적극적인 메시지로 관객을 이끄는 공간이라면, 아래층은 자연의 색과 빛의 아름다움에 몰입한 관객이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작가와 사진과 관객을 번갈아 사유의 주체로 만들며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인도하는 두 공간은 군집과 색이 유발한 사유의 닻을 관객의 마음에 내린다.   


미술평론가 심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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